'8월의 크리스마스' 블루레이 시사회
YES24에서 <8월의 크리스마스> 블루레이 출시기념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돼서 기뻐하며 갔는데.. 상영장소가 신세계 본점 문화홀. 극장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는 강당? 같은 느낌이어서,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관객매너도 좋아 불편함없이 볼 수 있었다.
허진호 감독 영화 중 유독 이것만 못 보고 있다가 작년에야 집에서 봤었는데 이렇게 좋은 화질로, 스크린에서 또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행복 :) 같은 컨텐츠라도 다른 매체를 통해 보면 또 느낌이 달라진다는 게 참 신기하다. 조그만 화면으로 볼 때도 좋긴 했지만 큰 화면으로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보니 또 다르더라. 눈물 꾹 참으며 보는데 옆자리 여자가 자꾸 훌쩍거려서 나도 참기 힘들어졌음ㅋ
두번째 보니 음악이 더 귀에 들어오고 조그만 소품도 눈에 띄고,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 볼 수 있어 좋았다. 선풍기, 아이스크림, 소나기... 모두 내가 좋아하는 여름 풍경들 :) 흉내낸 아날로그적 감성이 아닌 실제 90년대말의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음. 지금은 누구에게든 연락하고 싶으면 간단히 할 수 있으니 그때처럼 누군가를 막연히 기다릴 일은 참 없지.. 다림이 책상 앞에 앉아 정원에게 편지 쓰는 모습을 보니, 여가시간엔 책 읽고 라디오 듣고 편지 쓰던 때가 그리워졌다.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내 머리와 맘이 이미 디지털에 길들여져버렸네.. 하긴,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느린 것의 소중함을 알고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.
<봄날은 간다>나 <호우시절>도 좋지만 난 이 영화가 제일 좋다. 자기가 살아오면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첫 작품에 담기기 마련이라 그런지 감독이든 작가든 역시 첫 작품이 최고인 것 같다. 이후 작품들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아니고.. 다소 투박할진 몰라도 인위적이지 않아 끌린다. 영화 자체는 잔잔하면서도 보는 사람 마음을 일렁일렁하게 만들다니 희한하지.. 여러 지점에서 울컥했는데 그 중 최고는 역시 정원이 이불 뒤집어 쓰고 울 때... 내 맘이 꽉 막혀 오는 것 같더라. 밤길 걷다가 다림이가 슬며시 팔짱 끼는 장면도 좋았고. 허진호 감독은 그런 소소한 장면을 자연스럽고 매력있게 찍어내는 점이 멋져.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한석규가 부른 노래가 나오는데.. 그때의 느낌이 참 짠하고 묘해서 맘에 오래 남을 것 같다. 참 아름답고 쓸쓸한 영화다.
"내 기억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.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. 사랑을 간직한채 떠날수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."